개혁신당과 애자일

새로운 미래에서 하는 얘기를 도저히 못 들어주고 있겠다. 들으면서 화가 치미는 것은 회사에서 저런 부류를 매우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이준석의 기준에서는 이낙연은 너무 느리고, 이낙연의 기준에서 이준석은 대책없이 성급하다. 이준석은 애자일 철학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의 방식으로 당을 만들어 가고 싶고, 이낙연은 대기업에서 은퇴한 임원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부딪힌 이유는 이들이 생각하는 상식선의 베이스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김종민은 자신들의 속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준석이 딴지를 거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들의’ 기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준석의’ 기준에서는 느려 터진 속도였다. 김종민이 열변을 토하며 이준석을 비난했던 두 케이스를 살펴보면, 첫번째는 정책이 이낙연 때문에 펜딩된 건이다. 김종민의 주장은 이준석이 정책위원회를 통한 것도 아니고 이낙연에게 사석에서 말을 꺼냈고, 이낙연은 ‘정확하게’ 처리하자고 답했다고 한다. ‘위원회’는 그 자체로 속도를 줄이는 원흉같은 존재다. 이해관계자가 늘어나고 사안에 대한 이해도와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준석은 정책위원회가 아닌, 공동대표간의 빠른 합의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이 정확하게 처리하자고 한 워딩은 정책을 정하고 싶지 않다는 말과도 동일하다. 정확하다는 것은 디테일을 포함하고, 디테일을 따지고 드는 것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낙연이 ‘정확하게’ 처리하고 싶었다면, 누가 언제까지 어떤 레벨까지 정책에 대해 정리하겠다는 약속을 함께 했어야 의미가 있다. ‘신중하게’, ‘정확하게’ 처리하겠다는 이낙연 특유의 화법은 이낙연의 느려터짐과 음험함을 신중함으로 포장하는 클리셰다.
김종민이 제시한 두번째 예시는 당명과 컬러를 정하는 과정이다. 김종민은 매우 당당하게 당이 합쳐졌으니 당명은 개혁신당으로 가기로 했더라도, 컬러는 재고해 볼 여지가 있으며 ‘더 멋진’ 네이비 컬러를 섞어서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야 했었다고 한다. 이래서 스타트업에 대기업 꼰대들이 오면 안되는 것이다. 총선이 50일도 안 남은 시점에 첫번째 시간을 들이는 논의가 당의 로고였다는 것부터 에러인데, 네이비를 추가하는 논의를 하면서 한 시간을 썼다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절박감을 모르는 개똥같은 판단이다. 정책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이슈를 선점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준석이 봤을 때는 그런 주제로 10분이라도 시간을 쓰는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종민의 첫번째 예시는 속도를 잡아먹는 정확성의 시한을 정하지 않았고, 두번째 예시는 정당이 성공하는데 본질이 아닌 사안을 첫번째 논쟁 주제로 만든 어리석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스타트업의 방식으로 봤을 때 이낙연과 김종민은 엑스맨 그 자체다. 그러나 대기업 물을 먹은 그들은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문제다. 이준석은 표결로 최고위권한을 위임 받으면서 정확하게 두 단어를 말했다. ‘속도’와 ‘의외성’. 이것은 이준석이 애자일 철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앞선 비판들은 이준석의 개혁신당이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의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기반한다. 먼저 총선까지 50일 밖에 남지 않은 촉박한 상황이며, 개혁신당은 이제 막 창당한 당으로 소규모의 당이다. 부족한 시간과 자원은 스타트업이 맞닥뜨린 상황과 동일하다.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이야기는 개혁신당에게 사치다. 거대 악에 맞서기 위해서는 개혁신당은 바람에 몸을 실은 정찰선과 같이 가볍게 움직여서 세를 키워야 한다. 이준석의 실수라면 애초에 대기업에서 부사장까지 지낸 이낙연을 스타트업에 영입한 것이다.
그러면 왜 이준석이 모든 것을 정해서 치고 나가야 하는가? 반윤에서 시작한 이준석과, 반명에서 시작한 이낙연은 시작 명분부터가 다르다. 실정을 하는 대통령과 여당에 반대하는 이준석의 명분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세대로 나누어도 이준석은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젊은 층의 지지를 업고 있고, 이낙연은 나이든 사람들을 기반으로 한다. 합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젊은 층의 입맛을 공략하는 이준석의 셀링 포인트를 이낙연은 따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박지원은 대놓고 이 연합은 이준석 당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새로운 미래 여러분들은 그런 방식의 행동을 취하려 했다면, 대기업을 뛰쳐 나오면 안되었다. 가진 것도 쥐뿔 없고 온라인 위주의 매니악한 지지층만 있는 정당의 시작점에서 대기업에서 눈감고 신중한 척 하며 결재 사인만 하는 방식의 리더십은 설 자리가 없다.


이준석의 딜레마

살아있는 권력의 초기에 대놓고 태클을 걸고 있는 이준석. 이준석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 순간 바로 제거될 것 같다. 최근의 기자 회견과 방송 활동으로 관심을 끄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관심을 지속적으로 끄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미 문제의 핵심을 드러낸 폭탄 발언들은 다 나왔고, 계속 관심을 끌려면 자극적인 요소가 계속 나와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다. 그러니 팩트 위주로만 말하던 것에서 다른 사람의 의중을 짐작해서 말을 하게 되고, 이건 틀릴 가능성도 높거니와 타인의 심중을 확인할 방법도 없다. 아니면 취임식 카메라에 잡혔니 안 잡혔니 하는 지엽적인 이슈들을 생산하게 된다. 나는 이준석이 이 상황에서 살아남아서 변화를 만들어 내기를 바라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