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갈망

누군가가 특정 개념을 지나치게 좋아한다면, 그 사람이 그 개념을 전혀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심하라


동기부여

누구나 무엇인가 동기부여 된 채로 살아간다. 이미 우리 모두는 동기부여 되어 있기 때문에 남을 동기부여 시킨다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다만 그 사람의 동기부여 된 상태를 깨뜨리기는 매우 쉽기 때문에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


삼성 서비스 유감 - 갤럭시 탭S8 울트라 배터리 광탈 경험

저는 종이 노트를 사용하지 않은지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타블렛 PC로 필기하고 클라우드로 바로 동기화 시키면 종이를 낭비하지도 않고, 잃어버릴 염려도 없으며, 나중에 검색하기도 편합니다. 필기감을 중시하기 때문에 와콤 기반의 삼성 타블렛의 열혈 팬입니다. 2014년 경 윈도우 기반으로 나온 아티브부터, 갤럭시 탭S4, S7+를 사용했고, 최근에는 갤럭시 탭S8 울트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티비도 거거익선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처음 S8 울트라를 봤을 때는 화면이 꽤 부담스러웠지만, 14인치가 넘는 화면에 필기를 한 번 한 이후로는 다른 타블렛은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노트 테이킹을 용도로는 와콤에서 만든 뱀부 페이퍼라는 앱을 사용하는데요. 여러가지 노트앱을 사용해 보았지만 필기감이 가장 자연스러운 놈이 이것이라 정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PDF 위에 필기를 하면서 사용하는 용도로는 NoteShelf도 매우 좋습니다. 매우 만족을 하면서 S8 울트라를 사용하던 중에 최근에 배터리가 광탈하는 현상을 겪게 되었습니다. 처음 몇 번은 가방 안에 화면이 켜진 채로 들어 있었나 보다 했는데요. 자동 화면 꺼짐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것도 정상은 아닌 상황입니다. 어느 날 아침 충전 케이블을 끼워둔 채로 S8 울트라를 두고 잤는데, 전원이 꺼져 있었습니다. 배터리 사용로그를 보니 뱀부 페이퍼가 꽤 많은 양을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서비스 센터를 찾아 갔더니 센터에 있는 검사 툴로 돌려보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로그에도 뱀부 페이퍼가 사용했다고 나오니 특정 소프트웨어 이슈라는 얘기에 수긍하고 센터를 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뱀부 페이퍼를 항상 절전모드로 세팅을 했습니다.

그 후 며칠 뒤에 아침에 일어났는데 또 태블릿이 방전된 채로 꺼져 있었습니다. 바로 기기를 켜서 로그를 확인 했더니 아무런 앱의 사용 내역이 없는데 배터리가 광탈해 있었습니다.

앱의 사용없이 배터리가 광탈한 기기 상의 로그

다시 서비스 센터를 찾아갔습니다. 지난번에는 로그에서 특정 앱의 사용이 확인되어 해당 소프트웨어의 문제라 인정했지만 이번 상황은 기기 자체의 하드웨어 문제든, 안드로이드 OS 단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서비스 센터의 대응은 상식 밖이었습니다. 지난 번과 전혀 다르지 않게 검사 툴을 돌려보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아무런 이상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네???????????????”

1년도 되지 않은 기계에서 비정상적으로 배터리가 빠르게 방전되는 현상이 발생했고, 기가 상의 로그도 남아있는데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고객이 실제로 문제를 경험했는데도, 서비스 센터에서 검사하는 기계상에서 이상이 없다고 하면 이상이 없는 것이라는 논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지금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는데, 일기 예보에는 ‘맑음’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지금은 맑은 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비상식적인 대응에 관리자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는데, 센터 관리자는 정확하게 동일한 말을 했습니다. 자신들의 기계에서 이상이 없다고 했기 때문에 이상이 없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공장초기화를 했습니다. 하드웨어 이상이 없다면, 공장초기화를 하고 증상이 사라지기를 기대해야겠죠. 공장초기화 후 다행히 아직까지는 배터리 광탈 현상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저는 기존 삼성 서비스에서 느꼈던 것과 너무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외국 제품들이 경쟁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그래도 서비스는 삼성이지’라는 말을 들었던 그 서비스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여러 생각들이 들었는데요.

  • 삼성은 제품 기업이 아닌 제조업체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건가?

  • 제품 기업이라면 고객의 사용성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기준이 아닌가?

  • 센터 테스트 결과가 기기 로그로 증명되는 고객의 실제 문제보다 우선되는 것이 맞는가?

  • 삼성의 서비스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하드웨어의 수리에 국한되는가?

  • 삼성의 제품 담당자는 서비스 센터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있을까?

  • 삼성의 고위 임원은 이런 일들이 삼성의 이미지에 미치는 악영향을 인지하고 있을까?

저는 하드웨어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로 공장초기화를 해서 문제를 해결 했습니다. 공장초기화 조차 어려워 하는 할아버지가 탭을 사용하는 상황이라면 어땠을까요? 할아버지 고객은 센터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방전된 제품을 계속 두고 봐야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을 겪은 후에는 다음 번 타블렛 교체 시기가 다가 왔을 때 진지하게 아이패드 프로와 갤럭시 탭을 비교해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워라블

이걸 워크홀릭이라고 불러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일하는게 재미있다. 단순하게 일이 재밌다기 보다는 두뇌를 멍하게 두는 것이 너무 지루하다. 어릴 때 두뇌 풀 가동 퀴즈 책을 보는 느낌이랄까...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내 두뇌를 teasing 하는 용도로 회사 업무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건 나쁘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재미도 있고 돈도 벌고.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나의 일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것, 내가 세상에 머무르는 시간은 우주 전체의 역사에 비해 찰나와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의 고민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창밖의 투명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가 우주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 상상해 봤다. 연료가 없어서 난 다시 지구로 돌아올 수가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막막하기만 하다. 이런 상상을 하면 가족들이 나에게 하는 사소한 거슬리는 행동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억겁의 시간 속에 놓인 순간을 살아가고, 지금 이 찰나에 화가 나고 배가 고프다. 우주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일이 나에게는 전부인 일이다. 아무 것도 아닌 미미한 생물에 불과한 내가 전부인 것처럼 느끼면서 살고 있다.


나는 솔로, 빌런의 탄생 과정 - 나도 빌런이 될 수 있다

저는 연애 관찰 예능을 매우 즐겨보는 편입니다. 예전 ‘짝’의 모든 방영분을 정주행 했었고, ‘선다방’, ‘스트레인저’, ‘로맨스 패키지’, ‘하트시그널’, ‘러브캐처’, ‘한쌍’, ‘나대지마 심장아’, ‘에덴’ 등을 모두 섭렵 했으며, 최근에는 ‘나는 솔로’를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연애의 설렘을 느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인간의 심리가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규홍 PD가 연출한 ‘짝’, ‘스트레인저’, ‘나는 솔로’를 가장 좋아합니다. 다른 프로그램들은 PD의 개입이 큰 편이고, 그림을 예쁘게 만들려는 노력이 보이는 편이라면, ‘나는 솔로’는 날것의 느낌이 있습니다. 애초에 이름을 짓는 것에서부터 남규홍 PD의 철학을 볼 수 있는데, ‘짝’에서는 남자1호, 남자2호 등으로 이름을 정했고, ‘스트레인저’에서는 ‘작은 김씨’, ‘큰 김씨’ 등으로, 최근 ‘나는 솔로’에서는 과거에 유행했던 이름의 순위대로 ‘영수’, ‘영철’, ‘순자’ 등의 이름으로 정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정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일반인들이 출연하고 방송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을 때 악플러의 타겟이 되는 것을 최소화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더해서 호칭 자체로 주는 촌스러움은 이 프로그램이 그럴듯한 포장을 하기 보다는 일반인의 날 것을 그대로 드러낼 것임을 보여줍니다. 매회 되풀이 되는 이름은 개인의 정체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찰 대상이 되는 장기말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저는 ‘나는 솔로’를 보면서 빌런이 탄생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매 회 빌런이 등장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인 욕을 먹습니다. 내 주위에 있는 빌런의 확률을 봤을 때, ‘나는 솔로’에서 빌런의 등장 확률은 지나치게 높아 보입니다. 혹자는 남규홍 PD의 선구안을 칭찬하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시청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빌런을 선별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지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저는 사람들이 악의로 저지르는 일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악인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별 생각없이, 또는 선의로 어떤 행동을 했더니 그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훨씬 많을겁니다. 남규홍 PD가 인터뷰를 통해 의도적으로 빌런을 선발했을 가능성보다, 촬영을 시작했더니 빌런이 탄생했다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라는거죠.

이런 전제로 우리 주변에서 빌런을 발견할 확률보다 ‘나는 솔로’에서 빌런이 발견되는 확률이 왜 높은지를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두 가지 가설을 떠올렸는데요. 첫번째는 고립된 공간에서 제한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빌런을 탄생시킨다는 가설입니다. 생물은 보통 충돌이 생기면 회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돌이 일어난 상황에서 싸움을 하는 것은 서로의 생존확률을 깎아 먹기 때문에 웬만하면 서로 피하는 것입니다. 이기더라도 싸우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게 되면 생존에 유리하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런데 ‘애정촌’이라는 그라운드는 일주일 간 빠져나갈 곳이 없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목적이 다르다면 평화롭게 지낼 수도 있을겁니다. 그런데 모인 모두는 괜찮은 이성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동일한 목표를 가집니다. 고립된 공간에서 희소한 목표물이 있다면 싸움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물론 이성의 마음을 쟁취하겠다는 마음을 일찌감치 포기한다면, ‘CCTV’나 ‘나는 솔로 1열 참관인’, ‘펜션주인’ 같은 타이틀을 얻으며 유유자적하며 일주일을 쉬다가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이건 논외로 하겠습니다. 결국 싸움과 경쟁이 발생하면 인간은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밑바닥까지 보여주게 됩니다.

이 가설보다 좀 더 그럴싸한 것은 ‘내로남불’에 대한 것입니다. ‘내로남불’은 인간의 패시브 스킬이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완벽하게 ‘내로남불’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로남불’이 극대화 되는 과정이 눈에 보인다면 사람들은 욕을 하기 시작할겁니다. 이번 10기에서도 한사람에게 확신을 주고 싶다면서 영식과 포옹을 한 영자, 난척이 가장 싫다면서 누구보다 오픈하고 싶어하지만 매사에 삐지는 상철,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하면서 옆에 있는 모든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영식, 예체능은 싫다면서 현숙에게 대쉬하는 영호 등등 내로남불과 인지부조화가 판을 칩니다. 이들 모두는 빌런 후보로 등극하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이런 빌런들을 보며 욕하는 자체도 ‘내로남불’이라는 겁니다. 제가 저 상황으로 들어간다면 전 빌런이 되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24시간 내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가 촬영합니다. 저의 24시간을 찬찬히 되돌아 보고 편집을 조금 해보면 저도 수많은 빌런짓을 했습니다. 와이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와이프가 집안일을 하는데 폰으로 게임만 하고 드러누워 있었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빠지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걸 보고 시끄럽다고 방에 들어가서 놀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살이 찌는게 너무 싫어서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스크림을 한꺼번에 다섯 개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이거 완전 빌런 아닙니까? 여러분 앞에서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그 지인이, 당신을 만나지 않는 특정 시간에는 빌런 가면을 쓰고 있을 수 있습니다.

두 가지 가설을 합쳐보면, 저런 환경에서 24시간 누군가가 나를 지켜본다면 저는 분명히 빌런으로 등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나는 솔로’에서 빌런이 등장하면 인터넷 게시판이 불타고 시청율이 올라가는 것은 나도 빌런이 될 수 있다는 내 무의식과, ‘나는 저런 놈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합쳐진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저는 연애 관찰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보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빌런이 등장해서 날뛰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지나친 감정이입 없이 보면 ‘나는 솔로’는 비극이 아닌 희극 작품입니다. 매주 수요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나는 솔로’가 오래 가기를 바랍니다.